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 날조 사건 (문단 편집) == 개요 == [[이덕일]]이 '우리안의 식민사관'에서 말한 허위사실로 적어놓은 [[명예훼손]]이다. 거기다 김현구 교수를 향해 '내면이 일본인'이라는 모욕과 인신공격까지 벌인 경우이다. 실제로 김현구 교수가 처음 고발한 서울지검 이지윤 검사는 "학문의 자유및 표현의 자유보장"이란 측면과 함께 "이 소장이 자신의 분석견해와 재해석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며 [[불기소처분]]을 한 것인데 이를 다시 김현구 교수와 같이 동북아역사재단에 근무했던 서울 고검의 모검사가 기소했다고 한다.[* 학문의 자유를 빙자한 특정인의 명예훼손 및 공익훼손이라는 점에서 [[윤지선 남성혐오 논문 게재 사건]]과 일맥상통한다.] 2014년엔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는 날조를 저질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248654|기사참고.]] 사실 더 큰 문제는,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 비판의 선두주자라는 점이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가 실제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쓴 인물이다'(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338쪽)라든가 '백제를 야마토조정의 속국이라고 주장한다(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345쪽)'는 등 책 어디에도 없는 허위 사실을 퍼트렸다. 김현구 교수는 다만 '야마토 정권은 임나와는 직접적인 교류조차 없었고, 주로 백제와 교류를 했는데, 백제와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는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게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야마토 정권은 백제에게 군사적인 원조를 제공하는 특수한 용병관계였다'는 주장을 했을 뿐이다. 실제 김현구 교수 책을 보면 [[임나일본부설]]과는 무관하다. 김현구 교수는 일본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그것은 왜곡인데 이런 맥락에서 왜곡됐다'고 설명할 뿐이다. >위의 첫째 주장에 대해서는 설화전승일 뿐이며 위조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김현구 교수는 이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위의 징구우 황후 당시의 설화가 실제로 사이메이 천황(齊明天皇)의 백제부흥군 지원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료를 제시한다. '''일본 학자들이 이 두 가지 기록을 놓고 각각 전쟁의 주체, 대상, 성격 면에서 비슷한 면에 기대어 사실을 왜곡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둘째 주장에 대해서 김현구 교수는 이 책의 2장부터 5장까지를 할애해 그 '''논리적 모순을 밝혀낸다.''' 일본 학자들이 연대순으로 엮어낸 저 기록들의 허구를 밝혀내기 위해 '''저자는 그 기록들을 연대순으로 검토하며 그 기록 안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토대로 그 왜곡의 실체에 접근한다.''' >셋째 「광개토대왕비문」의 주장에 반박하는 부분에서는 한일간의 주장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학자적 태도가 돋보인다. 저자는 그동안 한일 학계에서 비문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391년 기록에 집중하기보다 그런 '''논란이 전혀 없는 연도의 기록을 택해 이를 논박한다. 결국 당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왜는 단지 지원군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 주도세력은 백제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599|개연성이 크다.]] 이덕일이 [[사학]]계 보고 식민사관, 노론사관이라 말한 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건 특정주체를 제대로 말하지 않거나 ~~[[주어]]없음~~ 해석 자체가 억지스러웠을뿐이지, 허위사실을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완벽하게 허위사실이다. [[왜인 한반도 남부 지배설|진짜 임나일본부론자는]] [[적반하장|오히려 이덕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